막내 딸 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분주하게 거실과 방을 오간다. 코로나19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고, 벌써 3학년이 되었다. 4월의 늦은 입학과 일상이 된 원격수업, 중학생 시절의 다양한 체험활동은 포기하는 게 자연스러워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추진된 수학여행. 게다가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이라니 그 설렘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번 여행이 아이의 첫 제주도 방문이 된다. 제주도는 아이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삼십년 전, 졸업여행을 다녀왔던 대학 시절의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시절 넉넉지 않은 경비를 몸 고생으로 보완할 수 있었던 우리들은 모든 여정에 몸을 갈아 넣었다. 부산 항구에서 밤새 달리는 배편으로 푸른 공기의 검은 땅 제주에 닿고, 배낭을 둘러멘 채 이어달리기의 선수 교체처럼 버스를 갈아타고, 민박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숙소에서 밥을 해먹었다. 광활한 밤바다는 짙은 검은 빛으로 그 깊이를 두려워하게 했고, 남쪽으로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지만 한층 넓어지고 짙어져 생소하기까지 한 식생은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어린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던 그 시절의 우리들은 친절이 익숙한 관광지의 거주민들이 베푸는 배려와 환영의 언어에 감동하기도 했다.
지루하게 줄곧 평탄하다가 급작스레 가팔라지는 한라산을 오르고, 갑자기 나타난 울창한 삼나무 길을 소리지르며 달리고, 생활의 근심으로 오염되지 않은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고, 잘 꾸며진 관광단지에서는 그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여자가 대부분인 우리는 남자가 대부분인 다른 학교 학생들과 일정의 일부를 공유하며 들뜨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제주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읽힌다. 이후 각기 다른 이유로 제주도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그때그때 내가 만나는 제주도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 각기 달랐던 여행에서의 제주도는 달랐던 만큼 각각 다른 형용사 아니면 다른 동사를 허락했다. 아득한 옛날, 격동의 에너지로 바다 밑에서 거칠게 뿜어져 너른 섬이 된 용암은 거주민들과 그 거친 역사와 변화의 시간들을 함께하며 그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다른 의미를 줄 만큼 넉넉한 품을 가게 된 듯하다.
나의 첫 제주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문득 나도 처음의 나에게 제주도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들, 특히 나의 학생들에게 동사로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유쾌하다', '열정적이다', '사려 깊다' 등 좋은 형용사로 읽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와의 만남이 그들에게 뭔가 행동하게 하는 기억으로 남는다면 더 각별하지 않을까? 제주도가 그런 것처럼 그 안에 변화해온 역사와 보여줄 수 있는 다양성과 충분한 품이 있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내 삶에 그 다양성을 지속해서 채우는 준비를 해봐야겠다.
중3 시절의 수학여행을 되새길 때 딸아이에게도 제주도는 동사이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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