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과학사, 그리고 과학교육”

일시: 2019년 2월 1일(금) 13:30 - 18:00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관 B동 B153호

<대담: 과학학, 과학철학, 과학교육>

장하석: 학생 때는 과학을 공부했다. 중학교 때부터 물리학을 사랑해서 대학 때까지 공부했으나 결국 마치지는 못하고 철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래도 모종의 형태로 과학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지금도 과학을 사랑한다. 그러나 과학교육을 받는 과정에서는 모종의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과학사, 과학철학 종사자들이 과학교육자들과 교류하고 싶으나 학제 간의 벽 때문에 쉽지 않다. 근년에 과학교육 종사자들과 교류를 하게 됐다. 그래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과학교육에 줄 수 있는 함의를 주제로 잡았다.

  1. 과학을 꼭 전 국민에게 의무화해서 얻는 것이 있는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문제다. 극소수의 학생은 잘 따라가지만,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공포감과 혐오감을 심어 줄 뿐이 아닌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2년만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미적분 싫었어, 화학 지겨웠어 같은 생각만 남게 되지 않는가? 그러면 일반 국민이 과학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더 멀어지지 않는가. 아예 안 시키면 호기심이라도 남는 것이 아닌가.

과학의 저변을 넓혀야 훌륭한 과학자가 나오는 게 아닌가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올림픽을 보면 온 국민이 양궁을 훈련하지 않는데도 매번 금메달을 따지 않는가? 극단적인 예로는 컬링의 경우도 있다. 훌륭한 과학자를 키우기 위해 보편적으로 과학교육을 수행한다는 것은 적절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상욱: 나도 과학을 좋아했다. 석사까지 물리학을 공부했고, 과학철학도 좋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트라우마 수준으로 끔찍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조흔색이다. 화강암, 퇴적암이 형성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은 좋은데 그 종류와 특성을 외우는 것은 괴로웠다. 그런데 내 딸도 30년 후에 똑같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21세기 과학기술 사회에서 논쟁에 참여하기 위한 필수적인 지식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는가. 과학 인지력, 과학 판단력을 중심으로 교육이 형성이 되어야 한다. 과학자가 될 사람을 위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장하석: 2. 과학자가 되지 않을 사람들, 그런 일반 사람들이 과학을 제대로 배운다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나는 과학도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음악을 감상하듯이 과학도 감상할 수 있어야 문화인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이 그런 것처럼 과학도 단지 보는 것만 아니라 직접 할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가에 의미가 있다. 생물이 어떻게 진화했는가, 우주는 어떻게 생겼는가, 물질을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간의 문화 양식 중에서 최고 수준이 아닌가 한다.

이상욱: 먼저 수능 등 실제적인 교육 제도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인지하고, 그에 대한 제언을 드리기에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재미있는 노동이라고 표현하는 과학적 실천에 대해서 중고등학생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학생들은 극적인 방식으로, 드라마틱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영웅적 상을 가진다. 중간에 과학을 그만두는 학생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한다. 문제 해결 과정이 매우 지난하게 어려우나 그 과정에서 하나 하나 쌓여가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scientific image of world의 핵심을 전달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장하석: 3. 최고의 과학교육을 할 수 있다면, 학생들이 최고의 과학 연구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과학고, 영재고에서 소수의 학생들일지라도 첨단 과학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게 실현성이 있을까. 그냥 가서 흉내내는 게 아닌가.

첨단 연구를 하는 것만이 연구는 아니다. 옛날 과학자들이 했던 연구를 되 밟아 보는 것도 연구에 도움이 된다. 그렇게 과학사적인 내용을 끌어들이면 좋은 점은 내용이 비교적 쉽다는 것이다. 실험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가능하다. 나의 저서 중에 “Is water H2O?”라는 책이 있다. 과학자들이 실제 물이 H2O라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도 굉장히 복잡했다. 학생들이 그냥 물은 H2O라고 외우는 것보다 과학자들이 실제로 고민했던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몇몇 선생님들과 전기분해라는 걸 다시 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실험을 다시 해보면 절대 교과서적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가. 왜 2:1로 정확히 나오지 않는가를 생각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한 방법이 역사적인 과학을 끄집어 내면서 학생들에게

  1. 과학사가 이런 새로운 교육을 한다, 유용하다라는 생각을

과학을 가르칠 때, 과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과학 지식이란 왜 훌륭한가, 과학 연구 과정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과학교육에 유용한 철학적 인식이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소위 NOS(Nature of Science)에서 다루는 과학철학 내용을 보면 과학철학자로서 답답하다. 과학철학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학 연구라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지저분한(?) 과정인지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현재 전달하는 지식은 포장된 형태로 깔끔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 지식이 형성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없고, 고마움을 느끼기 힘들다.

이상욱: AI 관련된 윤리적 철학적 연구를 진행중이다. 최근에 AI와 관련해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설명가능한 AI다. 딥러닝 같은 경우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이 그 AI가 신뢰 가능한지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 ‘화이트박스다. (블랙박스에 대비된 개념) 축적된 지식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올바른 과학적 방법론’을 상정한다. 그러나 실제 연구 과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첨단연구에서는 세계 탑클래스 과학자들이 논쟁한다. 컨센서스가 있는 경우에는 자명하게 보이지만, 그 전까지는 컨센서스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감안해야 한다. 과학 전문가 집단에서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사실 진짜 과학의 재미있는 지점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화이트박싱을 해서 잘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주사회를 살아나갈 민주시민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과학도 그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 현대사회라는 게 과학기술 없이 이해할 수 없다.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과학과 기술을 알아야 한다. 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과 결부된다. 현대 문명이 과학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시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