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인사드리고 벌써 또 한 달이 지났군요. 완연한 가을입니다. 아침이면 영하에 가깝게 떨어지는 기온, 창밖에 보이는 가을하늘, 단풍으로 곱게 물든 나뭇잎을 보며, 이제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깜짝 깨닫습니다. 점점 더 짙어지는 단풍을 보며, 내게도 과연 저처럼 짙어진 것이 있을까, 가만 생각해보는 요즘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았으면 했던 오랜 누군가의 멋진 모습이 지금도 여전한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지만,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안타까운 슬픔입니다. 작년 말 한 대학의 대학원생이 실험실에서 폭발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 “그 쇳물 쓰지 마라”의 용광로 사망과 같은 일이 올해에도 한 제철소에서 다시 있었다는 소식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사회의 여러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합니다. 기업 이익이나 연구 성과를 양팔 저울의 한쪽에 올리고, 다른 쪽에는 사람의 안전을 올려 저울질하고 있는 것만 같은 끔찍한 모습입니다. 사람은 저울의 한쪽 팔에 올릴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요? 여론에 떠밀려, 대학이 대학원생 치료비 지급 중단 결정을 번복한 것은 다행이지만, 대학의 실험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한 공간으로 변해야합니다. 노동과 실험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바뀌어야합니다.
‘ESC 어른이 실험실 탐험’은 이주일마다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표지에 회절격자가 들어있어 무지갯빛 찬란한 책 <빛의 핵심>의 저자이기도 한 고재현님이 10월 17일 춘천에서 탐험대를 이끌어 주셨고, 10월 31일의 세 번째 탐험은 제가 온라인으로 진행했어요. 사실 전 탐험할 실험실이 컴퓨터 안에 있거든요. 지금까지 3회의 실험실 탐험을 함께 하신 탐험대원분들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이기욱님과 원병묵님의 실험실 탐험이 계속 이어집니다. 문화위와 청년위가 함께 기획한 <ESC-Live 시즌 4>도 11월 4일 시작합니다. 시즌 4의 주제는 ‘덕업일치’군요! 우리 ESC의 청년 과학기술인들이 들려줄 덕업일치의 삶이 궁금해, 기대가 정말 큽니다. ESC에서 회원들 사이를 이어주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네트워크 위원회가 올해의 송년모임을 새롭게 기획하고 있습니다. 궁금하시죠? 정말 새롭고 놀라운 시도랍니다. 네트워크 위원회 위원장 이기연님이 위원장의 편지에서 좀 더 얘기해 주실 겁니다.
그럼, 한달 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20년 11월 1일
ESC 대표 김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