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나의 첫 OOO'로 기념할 만 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떠올려 본다. 어떤 물건? 어떤 경험? 어떤 사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나는 정말 현재를 사는 사람이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예전에는 사소한 물건 하나도 버리지 못해 다 끌어안고 있었는데. 한참을 더듬다 자동차를 떠올렸다. 나의 첫 자동차.

지금까지 총 세 대의 차가 나를 거쳐 갔다. 첫 번째는 10년 된, 무려 수동 기어 프라이드 베타였다. 조카가 운전면허를 땄다는 얘기에 큰외삼촌이 차를 바꿀 계획이었다며 무작정(!) 주셨다. 초보에게 스틱이라니... 그래도 워낙 튼튼한 차였어서, 내가 3년 그리고 동생이 2년쯤 더 타면서 우리 두 남매 운전 실력이 느는 데 톡톡한 기여를 했다.

두 번째는 하얀색 아반떼XD. 이 차가 바로 내가 꼽는, 나의 첫 자동차다. 외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시면서, 우리 엄마에게는 내 차를 바꿔주라고 하셨단다. 큰손녀가 당신의 큰아들이 물려준 낡은 스틱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게,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손녀가 딸과 사위를 그 낡은 차로 모시고 다니는 게 못내 눈에 밟히셨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떤 차를 살까 고르고 골라 하얀색 아반떼를 소유하게 되었었다. 그 차를 몰고 갔을 때 할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나의 첫 자동차를, 할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차였기에 정말 애지중지하면서 오래오래 탔다. 차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만 17년 가까이 탔다. 지금 이 차는, 출고부터 쭉 관리해준 나의 단골 카센터 사장님이 딸래미 운전 연수용으로 인수하셔서 여전히 잘 달리고 있다. 이 차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분이 가져가셔서, 그래도 안심하면서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온전히 내 자금으로 마련한 세 번째 차를 타고 있다. 앞으로 많으면 두어 번 정도 더 새로운 차를 만나게 되겠지. 그렇게 되더라도 아마, 나의 첫 자동차를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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