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를 보고 판타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르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로 저런 의사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비꼬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은 현실이죠. 이솝우화식의 결말을 기대하며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이 영화보다 더하다는 것을 마주칠 때마다 단전부터 올라오는 이 감정을 표현할 단어는 ‘환멸’뿐이란 걸 느끼게 됩니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결론과 과정, “에이 그러지는 않겠지”싶은 믿음들이 모두 깨지고 심지어는 그 믿음이 조롱당할 때, 그 믿음이 “니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래”라는 말로 부정당할 때, 그걸 넘어서 그럴듯한 논리의 탈을 쓴 논거로 반박하며 상식을 틀을 허물 때, 저 또한 그 상식과 함께 무너집니다.
가끔은 토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위선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할 때 말입니다. 위장을 튼튼하게 타고난지라 실제로 헛구역질이 난 적은 없지만 차라리 정신이 신체를 지배해 당장 토를 한다면 속이 좀 개운해지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노동자를 위한 투쟁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회사에서는 갑질을 일삼는 이,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자신은 실천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세계 평화를 얘기하면서 무기 파는 회사로부터 뒷돈을 받는 이들도 있겠죠.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이 세상의 위선들은 차고 넘칩니다. 어쩌면 그게 상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수의 생각이 ‘상식’이라면 말이죠. 위선에 대한 면역이 덜 자란 제가 덜 상식적인 인간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 첫 환멸은 요즘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냉소적일 만큼 큰 환멸을 느낀 적은 처음입니다. 아는 이가 제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는 쓰레기들이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정치를 하려거든 쓰레기가 돼야 해. 세상을 바꾸려면 쓰레기가 될 용기가 있어야 해.” 그가 가진 저 냉소를 저는 원망했습니다. 모든 정치를 쓰레기로 비유하며 조롱하는 것을 지금도 원망합니다.
‘당신들이 그러니까, 그래왔으니까, 지금, 이렇잖아.’
그렇게 저도 냉소적으로 변해가나 봅니다. 환멸하면서.
오늘의 에세이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제 감정을 토해낸 두서없는 글입니다. 뒤엉켜버려 정리할 수 없는 제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글이 이정도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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