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2년 봄, 느티나무아카데미에서 접한 과학 인문 융합 수업을 통해서 ESC를 알게 되었다. ‘과학과 인문의 융합’이라는 키워드는 나를 이끌리게 하였다. 생애 첫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유료 강의료가 아깝지 않은 훌륭한 강사님들과 멋진 아카데미 직원분들의 활동들을 알게 되었다. 내게는 오아시스 같은 강의주제였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분위기는 유럽의 토론 강좌가 연상되는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에서 ‘융합’이라는 주제의 카테고리를 가진 수업과 학과, 연구는 그리 달갑지 않은 분야라고 들었다. 왜냐하면 ‘융합’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일이나 학과는 취업과는 무관한, 즉 서류나 면접점수를 깎아 먹는 단어라고 한다. 이런 얘기를 하신 분은 33년간 조직문화를 위한 강연을 해오셨고, 대학에서의 직업 멘토링과 사회학 박사로서 수년간 강의해오신 전문가의 볼멘소리였다.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자 무시할 수 없는 비판인 것이다. 생각에 잠기게 된 그 순간의 충격을 잊을 수 없었다. 많은 것을 떠올려 보게 된다.
나는 늦깎이 학생으로 유학하였다. 자유로이 학문을 탐구할 수 있었던 학생 시절, 비록 남보다 늦게 시작한 나의 학위과정은 나에게는 결코 약점이나 억압이 아닌 자유로운 탐색의 시간이었다. 많은 것을 공부하였고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이들을 만나며 정말 많은 좋은 경험을 하였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와 학풍에 잠시나마 푹 젖어 들어서 마음껏 고민도 하고 마음껏 가정도 돌보며 매시간을 햇볕 쬐듯이 따스하게 지냈다. 졸업을 하기도 전에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으니 이 또한 나에게는 즐거운 여정의 요소였다.
그런데 사람의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다. 그 회사가 대기업 내 구조조정이 되고 다른 그룹에 통째로 넘겨져서 나의 취직자리는 허공으로 달아나 버렸다. 학위 전에 이미 기업체에서 연구팀 소속으로 일해오던 나에게 대기업으로의 취직은 당연한 길이었고 제일 잘하는 일들이었기에 익숙한 직업 분야였고 덕분에 학위과정은 학문적 깊이를 가고자 하기보다는 논문을 최소한으로 쓰며 더 많은 문화적 유산을 내 안에 감각으로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나를 지배하였다. 그래서 졸업을 위한 최소한의 결과를 만들고 나머지 시간은 양 떼를 보러 다니고 오래된 유적을 밟고 사람들의 생각들을 나누고 우리나라와 다른 부분들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느끼며 내 안의 재료로 남겨 놓게 되었다. 약속했던 취직자리가 날아가기 전까지는 느긋했지만, 갑자기 없어진 그 자리를 어떤 일들로 채워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나는 계속 대학 내 활동들을 해나가게 되었다.
나의 직업의 카테고리와 방향을 융합이라고 결심했었다. 내가 느낀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풀어가자니 한가지 학문으로만 되지 않고 내가 그리 한가지 학문에 깊이를 갖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고백한다. 무엇보다 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의 이견을 조율해가면서 사회복지를 이루기 위한 학회에 참여 한 적이 있다. 학생회원이기에 참관만 하는 자격이었지만 정말 함께 의욕을 느끼고 잘되기를 바라며 서로가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학회를 하고 간호사와 정치가가 한자리에서 의견을 나누고 화학자가 건축가와 실버타운의 구조를 논의하고 교수와 학생이 함께 비스킷을 먹는다. 서로가 서로를 정말로 존경한다. 무엇보다도 그 자리의 주인공은 과학자도, 의사도, 행정가와 정치가도 아닌, 바로 노인분들이었다. 그분들을 모시고 그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을 하려고 의사, 화학자, 교육자, 간호사, 건축가, 행정가, 정치인들이 모인 것이다. 그저 한 대학의 작은 세미나실에서 말이다. 화려한 기업후원자도 없고 눈길을 끄는 현수막도 없었다. 뜻을 가진 이들이 모일 수 있는 수단을 통해서 모여 교수가 연구비를 나누고 행정가들이 더 지원해주고 정치가들이 기부를 하는 등의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감동을 하였던 그들의 멋진 융합연구의 장이었다. 나도 한국에 가면 아픈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이 도시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장년층과 노년층을 위한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학위를 마쳤다. 미리 무언가 자리를 만들거나 인맥을 활용하지 않고 그저 몇 개의 직업공고를 추려보다가 나를 온전히 나만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체 연구소에 들어가는 것으로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연구소이기 때문에 국책과제도 하고 교수님들도 만나면서 융합연구라는 주제에 대한 화두를 꺼내 보고 싶었다. 비록 직장인으로의 시작이지만 나의 방향성을 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바, 현실은 융합학과 혹은 융합연구는 금기 단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의 현실감각에 적지 않은 실망을 하였다. 내가 배운 것은 가진 적을 나누고 학문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탐구할 수 있는 분위기의 학풍을 나는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도 꿈을 꾸며 새로운 일들과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고 준비하고 도전하며 계속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그러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계속 더 해내고 싶다. 아주 작은것에서부터터 나의 손길이필요로 하고고 내가 행복한보람 있는는 일들을 하기에는 한가지 영역도 좋지만 건강한 몸과 정신을 보통의 사람들이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하나씩 섭렵해 나가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 나의 꿈이고 나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소소히 해가는 나의 인생 여정에 있어서 ESC는 그 발걸음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첫 기부단체이자 모임이다. 나의 경험도 생각도 꿈도 그리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글로 하나씩 풀어가면서 과학과 인문, 예술의 융합,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사회, 평등과 행복이 당연한 사회가 되는 희망을 품은 활동들을 소소히 실천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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