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당초 1954년에 일본의 개진당(자민당 전신)이 원전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핵폭탄의 '핵'에서 오는 부정적인 뉘앙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자력이라는 단어를 밀었습니다. 1953년 아이젠하워가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을 제안했을 때 Nuclear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려 했던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었고요. (다른 수많은 학술 용어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1950년대 말 원자력원을 세울 때 일본에서 만든 단어를 그대로 음차해 사용했죠.

원전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물리학도로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번역어로서의 '원자력'이 지니는 모호성입니다. 전자가 서로 다른 에너지 준위를 이동하면서 일어나는 '원자 레벨'의 반응도 아닌데 왜 원자라는 말을 쓰냐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선 원자폭탄(Atomic Bomb)이란 말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수원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린피스 홈페이지에서도 '원자력 에너지'라는 말을 쓰던데 Nuclear Power Energy(?)도 아니고, 어색한 표현입니다.

여러분들과 논의 중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uclear Plant는 '원자핵발전소'라 번역하고 줄여서 부를 땐 지금과 마찬가지로 원전이라 부르는 겁니다. Nuclear Power(Energy)는 원자핵 에너지 혹은 기존처럼 핵에너지라 부르면 됩니다. 원자력의 력(力)은 Power의 번역인데 물리학에서 力을 쓸 때는 Force의 의미이지 Power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용어 사용의 정합성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 합의만 해도 '원자핵발전소'의 명칭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많이 쓰여온 단어의 전통도 살리고, 물리적 실체를 더 정확히 가리킬 수 있으며, 다시 새로 정립한 말이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엔 원자핵공학과가 있기도 하고, 원자핵과 발전소 각각 오래 쓰인 단어로 붙여서 쓰거나 읽을 때 착 달라붙습니다.

참조 칼럼(일한 구글 번역): https://goo.gl/oauQUW ('핵'과 '원자력'은 어떻게 다른가)